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본문: 마태복음 12:14–2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사람의 마른 손을 회복시키신 일을 보고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지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회복되었지만, 그 회복을 본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완고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회복시키신 바로 그 사건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계획을 아시고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물러나심은 두려움에서 나온 도피도, 사명의 포기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리를 옮기셨지만 사명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거절은 예수님의 긍휼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와 명성을 통해 자신의 메시아 됨을 세우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는 바로 이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 42장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보라 내가 택한 종, 내가 사랑하는 자,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예수님은 단순히 온화한 성품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종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이며, 사랑하시는 분이고,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방식은 세상의 왕들과 다릅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를 높이거나 사람을 짓밟는 방식으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온유함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이것은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는 옳은 것을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항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말씀 가운데 하나로 설명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상한 갈대는 이미 약해져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완전히 부러질 수 있습니다. 꺼져가는 심지는 불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상한 것을 더 꺾지 않으십니다.
이미 지친 사람을 더 짓누르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을 쓸모없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상한 것을 더 꺾지 않으십니다.
때로 우리 자신이 상한 갈대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는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고,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으며, 마음에 남은 힘조차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먼저 강해진 다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갈대이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필요합니다. 꺼져가는 심지이기 때문에 그분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얼마나 단단하게 서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온유함을 연약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의를 승리로 이끌 때까지.”
예수님은 온유하시지만 패배하는 분이 아닙니다. 긍휼이 많으시지만 악과 불의를 그대로 두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분의 온유함은 약함이 아니며, 그분의 긍휼은 정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처럼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고난을 받으셨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손은 약한 손이 아닙니다. 그 손은 죽음을 이기시는 왕의 손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은 놀랍게 끝납니다.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거절당하신 종이 열방의 소망이 됩니다.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던 그분의 이름을 열방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교도 우리의 능력이나 눈에 보이는 결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얼마나 빨리 변화가 나타나는가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선교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도 우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열방의 소망이십니다.
사람들의 거절에도 사명을 멈추지 않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걸어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쳐 상한 갈대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다시 그분의 손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강함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강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붙드시는 그리스도가 강하시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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