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Jesus went on from the house where He had raised the girl from death, two blind men began following Him and crying out, “Have mercy on us, Son of David!” They could not see Jesus with their physical eyes. Yet the title they used for Him reveals something remarkable. They called Him “Son of David.” This was more than a reference to Jesus’ ancestry. It carried strong messianic significance. God had made promises concerning David’s throne and kingdom, and Israel had long awaited the promised King from David’s line. Matthew has prepared us for this from the very beginning of his Gospel: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Matthew 1:1) What Matthew announced to his readers in chapter 1 is now being cried out by two blind men in chapter 9. There is a beautiful irony here. Their eyes could not see Jesus, yet they were beginning to see who Jesus was. Throughout the Gospel, there will be people who can physically see Jesus and even witness His miracles, yet fai...
눈은 보지 못했지만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9:27–31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를 일으키신 후 그곳을 떠나실 때, 두 맹인이 예수님을 뒤따르며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는 알아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두 사람이 시력을 회복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마침내 그분의 말씀 앞에 서게 되는 사건입니다. 1. 눈은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을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 곧 다윗의 계보에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 1:1) 이제 마태복음 9장에서 그 사실을 눈먼 사람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는 알아보았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정말 보고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나아갔습니다. 2.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은 그분의 긍휼을 구합니다 두 사람은 자신의 공로나 자격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의지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분께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앞에 선 사람의 태도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격을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격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긍휼을 의지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님, 저는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가 아니라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