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ll think about the future. What will we eat? What will we wear? Will our needs be met? What will happen tomorrow? Thinking about these things is not wrong. Planning is not wrong. Working hard is not wrong. The problem begins when anxiety takes control of our hearts. Jesus says in Matthew 6: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Jesus is not telling us to become irresponsible. He is not telling us to stop working, planning, or preparing. He is addressing the kind of worry that begins to rule us and makes our problems look bigger than our Father. Jesus first tells us to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yet 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Then Jesus asks: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This does not mean that we should be lazy. Birds still move, search for food, and care for their young. The point is that their lives are still sustained by God’s providence. If God ca...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필요한 것은 채워질까, 계획한 일이 잘 될까. 이런 생각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생각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말씀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하는 염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히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우리의 시선을 바꾸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곳간에 쌓아 두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이것은 게으르게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새도 먹이를 찾고 움직입니다. 그러나 새는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자기 통제력에 걸고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도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를 버려 두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들꽃을 보라고 하십니다. 들의 꽃은 실을 잣지도 않고 옷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그 꽃 하나만큼 아름답게 입지 못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입히신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얼마나 더 돌보시겠습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부르십니다. 믿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지만 염려에 눌려 아버지를 작게 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보다 문제가 더 크게 보이고, 내 부족함은 잘 보이는데 아버지의 손길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우리의 시선을 돌리십니다. 새를 보라. 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