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ciples of John came to Jesus with a sincere question: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Fasting was an important spiritual practice. It could express repentance, grief, prayer, and a deep longing for God. So their question was understandable. But Jesus did not begin by explaining the rules of fasting. Instead, He spoke about Himself. “Can the wedding guests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y asked about fasting. Jesus answered by talking about the Bridegroom . That is the key to understanding this passage. Who Is With You? John’s disciples were focused on what people were doing. We fast. The Pharisees fast. Why don’t Your disciples fast? But Jesus redirected their attention. The deeper question was not simply: “What religious practice are you doing?” It was: “Do you understand who is here?” A wedding is not the proper place for the friends of the bridegroom to mourn while the bridegroom is standing among them. The Bridegro...
신랑이 오셨다 마태복음 9:14–17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금식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찾는 중요한 신앙 행위였습니다. 회개할 때 금식했고, 슬퍼할 때 금식했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때 금식했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의 사역은 회개와 기다림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니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상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의 규칙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자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어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금식에 대해 물었는데, 예수님은 신랑에 대해 대답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 말씀의 중심이 있습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가 요한의 제자들의 관심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우리는 금식한다. 바리새인들도 금식한다. 그런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보라.” 결혼식에서 신랑이 함께 있는데 신랑의 친구들이 상을 당한 사람처럼 슬퍼한다면 이상합니다. 지금은 신랑이 함께 있는 때입니다. 기다리던 분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단순히 이전의 종교적 관습을 반복할 때가 아니라, 신랑의 임재를 기뻐할 때 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내가 얼마나 많은 종교적 행위를 하고 있는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과 어떤 관계 속에 살아가는가 가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신랑”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종종 자기 백성과의 언약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랑이 함께 있다.” 예수님은 단지 새로운 금식 방법을 가르치러 오신 종교 선생이 아닙니다. 그분의 오심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