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십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이 한 절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예수님의 사역을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만 보여 주지 않습니다. 36절에서 그는 그 모든 사역의 깊은 곳에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예수님은 무리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수많은 군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얼마나 방황하고 있는지를 보셨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양에게 목자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지도자가 없다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기 어렵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어렵습니다. 먹을 곳과 쉴 곳으로 인도해 줄 목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무리를 보시고 책망부터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헬라어 ἐσπλαγχνίσθη는 단순히 “안타깝게 생각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보시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긍휼이 일어났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긍휼 없는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긍휼도 진리 없는 긍휼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가르치셨고,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동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품으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에서 추수할 밭으로
그런데 37절에서 예수님의 비유가 갑자기 바뀝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사람들의 현실만 보면 지치고 흩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추수를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만 보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주님은 앞으로 거두실 열매를 보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추수할 것이 많으니 당장 뛰어나가라”고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38절에서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여기에 선교와 사역의 중요한 질서가 있습니다.
추수에는 주인이 계십니다.
추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추수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추수를 이루시며, 필요한 일꾼들을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필요를 발견한 제자의 첫 번째 반응은 조급함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주님, 주님의 추수에 일꾼을 보내 주십시오.”
기도하던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9장은 제자들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마침내 그들을 보내십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사람들이 보내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같은 형태의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의 기도는 자신의 삶을 제외한 채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 일꾼을 보내 주십시오.”
그 기도 안에는 이런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사용하기 원하신다면, 저도 순종하게 하소서.”
선교는 그리스도의 긍휼에서 시작됩니다
마태복음 9:35–38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선교의 시작점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보시며 추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먼저 우리의 열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목자 없는 양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긍휼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추수의 주인도 아닙니다. 추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추수에 참여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일꾼입니다.
그래서 사역이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추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내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무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보다 더 깊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목자 없는 양을 바라보시며 깊이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교는 우리의 부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긍휼에서 시작되고, 기도를 거쳐, 주님의 부르심과 파송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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