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주 짧게 말합니다.
“제자들이 따랐더니.”
이 한마디는 앞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전 한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이제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더니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폭풍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는데 폭풍이 왔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마태가 사용하는 표현은 강렬합니다. 단순히 바람이 조금 세게 분 정도가 아닙니다. 배가 파도에 뒤덮일 정도의 큰 폭풍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잘못된 길로 간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해서 배에 탄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 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순종의 길에서도 폭풍은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삶에 폭풍이 왔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파도가 배를 덮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 장면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밖에는 큰 폭풍이 있는데 예수님은 평안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잠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주무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상황은 더 어려워지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주님은 정말 알고 계실까?”
“주님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실까?”
그러나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다고 해서 그분의 권세까지 잠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침묵이 주님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기도에는 믿음과 두려움이 함께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겠습니다!”
그러나 믿음도 있습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그들은 적어도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떨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주님, 도와주세요”라고밖에 말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전혀 없는가가 아니라,
두려울 때 누구에게 가는가입니다.
작은 믿음도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폭풍부터 잠잠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폭풍은 아직 불고 있습니다.
파도도 아직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의 마음을 다루십니다.
제자들은 폭풍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것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 너희와 함께 배에 타고 있는지 보아라.”
믿음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평안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폭풍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에도 나와 함께 계신 분이 누구인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큰 폭풍이 큰 고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마태의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처음에는 **“큰 폭풍”**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큰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큰 폭풍이 큰 고요로 바뀌었습니다.
폭풍보다 더 크신 분이 그 배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는 폭풍이 너무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알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폭풍보다 훨씬 크신 분이셨습니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신가?”
폭풍이 잠잠해지자 제자들이 놀라 말합니다.
“이분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바로 이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쉽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 삶의 폭풍은 무엇인가?”
물론 필요한 적용입니다.
그러나 마태가 마지막에 남기는 질문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분이 누구신가?”
이 이야기는 폭풍에 관한 이야기이기 전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 바다와 폭풍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폭풍을 멈추어 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바람과 바다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마태는 긴 설명을 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그러면 이분은 도대체 누구신가?”
폭풍 속에서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앞의 말씀과 연결해 보면 더욱 의미가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제자들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폭풍 속에서 제자들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폭풍이 없었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까지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이렇게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아마 폭풍이 없는 안전한 항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더 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도의 목적은 언제나 편안한 항해가 아닙니다.
제자도의 목적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님, 이 폭풍을 없애 주세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때로 폭풍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을 보여 주십니다.
“폭풍만 보지 말고 나를 보아라.”
처음에 제자들에게 가장 크게 보였던 것은 폭풍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폭풍이 크게 보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자라갑니다.
폭풍이 전혀 없는 삶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폭풍을 지나면서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아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폭풍은 언제 끝날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폭풍 가운데 나와 함께 계신 이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바람과 바다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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