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신 예수님
마태복음 8:14–17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는 직접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백부장은 고통받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모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말합니다.
“예수께서 보셨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그러자 열병이 떠났습니다.
우리를 먼저 보시는 예수님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고통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의 장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보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는 우리가 주님께 설명하기 전에 이미 그분의 눈앞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에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보십니다.
그리고 가까이 오십니다.
손을 만지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손을 만지셨습니다.
앞서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도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실제로 백부장의 하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에게는 가까이 다가가 손을 만지십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만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능력에는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차갑고 멀리 있는 권위가 아닙니다.
그분의 능력에는 긍휼이 있습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일어나 섬겼습니다
열병이 떠나자 베드로의 장모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섬겼기 때문에 고침받은 것이 아닙니다.
먼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그녀가 일어나 섬겼습니다.
복음의 순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서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분을 섬깁니다.
섬김이 은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섬김을 만들어 냅니다.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저녁이 되자 상황은 더욱 커집니다.
사람들이 귀신 들린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병든 사람들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모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앞에서는 한 사람씩 등장했습니다.
나병환자 한 사람.
백부장의 하인 한 사람.
베드로의 장모 한 사람.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치거나 귀찮아하시며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고 그분은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말씀만으로
16절에는 앞의 백부장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백부장은 말했습니다.
“주님, 말씀 한마디만 하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권위가 다시 드러납니다.
질병이 그분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악한 영도 그분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악한 영들이 떠납니다.
그분은 단순히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아닙니다.
그분은 권위를 가지신 왕이십니다.
그런데 마태는 더 깊은 이유를 말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많은 병자를 고치셨을까요?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까요?
마태는 17절에서 이 모든 사건을 직접 해석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짊어지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신 분
이 말씀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받는 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기적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보여 주는 표지였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깨어짐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는 우리의 죄까지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치유를 단순히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병이 지금 반드시 낫는다”는 공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질병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했으며, 언젠가 그 나라가 완성될 때 죄와 질병과 죽음이 영원히 사라질 것을 미리 보여 줍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베드로의 장모처럼 누워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의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사역의 지침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무거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십니다.
우리가 설명하기 전에 보십니다.
우리가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시는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때 우리도 베드로의 장모처럼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일어나 섬기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를 보셨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나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 그분을 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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