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미시는 예수님
마태복음 8:1–4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 위에서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서기관들과 달리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8장에 들어서자, 그 권위가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나병환자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오고 있었지만, 마태는 그 많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우리의 시선을 돌립니다.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꺼렸던 한 사람.
그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주님, 원하시면”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는 이렇게 묻지 않았습니다.
“주님, 정말 저를 고치실 수 있습니까?”
그는 이미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원하시면.”
여기에는 믿음과 겸손이 함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얼마나 아름다운 대답입니까.
그가 확신하지 못했던 바로 그 부분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주님, 원하시면…”
“내가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지셨다
예수님은 손을 대지 않고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조금 뒤 백부장의 종을 고치실 때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말씀만으로 고치십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손을 내미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여기며 가까이하기 꺼렸던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피부의 치료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에서 멀어져 있었을 그에게 예수님은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만지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멀어졌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부정함보다 강한 예수님의 거룩함
여기에는 놀라운 역전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정결 규례에서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부정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달랐습니다.
그 사람의 부정함이 예수님을 더럽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정결함이 그 사람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부정함을 피하기만 하는 거룩함이 아닙니다.
부정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를 깨끗하게 하는 거룩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대시자 즉시 나병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에는 회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만 고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야기는 3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깨끗해진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왜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셨을까요?
레위기의 정결 규례에 따르면 피부질환에서 회복된 사람은 제사장의 확인과 정결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돌아가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피부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삶 전체를 보셨습니다.
몸의 회복뿐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까지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증상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확인하지만 예수님은 깨끗하게 하신다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깨끗해진 사람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떤 정결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그 사람의 병을 고친 것은 아닙니다.
그를 실제로 깨끗하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율법은 정결함을 확인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입니다.
우리도 그 사람처럼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상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정말 나 같은 사람도 받아 주실까?”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복음은 우리가 깨끗해진 다음 예수님께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깨끗하게 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고, 그분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멀리했던 사람에게 손을 내미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상하고 부끄럽고 죄로 얼룩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에게는 깨끗하게 하실 능력이 있고,
다가오시는 긍휼이 있으며,
회복시키시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삶을 주님의 뜻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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