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위에 인생을 세우고 있는가
마태복음 7:24–29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마지막을 한 채의 집 이야기로 마치십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똑같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집은 서 있었고, 다른 집은 크게 무너졌습니다.
차이는 집의 크기도, 아름다움도 아니었습니다.
기초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말씀을 들었다
이 비유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설교를 많이 듣는다고 자동적으로 반석 위에 집이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동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반석 위의 집에도 폭풍은 온다
지혜로운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고 해서 비가 그 집을 피해 가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홍수가 났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세게 쳤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인생에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질병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올 수 있습니다.
관계의 아픔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역의 실패와 실망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차이는 폭풍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폭풍이 왔을 때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는가입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흔들릴 수는 있어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기초가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풍은 기초를 드러낸다
평소에는 두 집의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래 위의 집도 멀쩡하게 서 있었습니다.
어쩌면 겉으로는 더 아름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초는 겉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폭풍이 왔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역할 수 있습니다.
직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내 삶의 기초가 무엇이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폭풍은 단순히 인생의 고난만을 의미한다고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그 날”에 있을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는 더 궁극적인 질문도 담겨 있습니다.
“내가 세운 인생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도 서 있을 수 있는가?”
모래 위의 집도 처음에는 서 있었다
모래 위의 집이 처음부터 무너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집은 서 있었습니다.
문제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폭풍이 오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것은 단순한 손상이 아닙니다.
완전한 붕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 자기 생각, 자기 욕망, 돈, 성공, 사람의 인정, 세상의 가치 위에 인생을 세운다면 평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원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 비유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반석은 예수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 그것은 분명히 옳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내 삶의 권위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넘어집니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말씀 앞에서 변명하는 대신 회개합니다.
“주님, 제가 옳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이 반석 위에 삶을 세우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셨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그 이유를 마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자처럼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은 앞선 교사들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이것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좋은 삶의 방법을 제안하시는 교사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할 권위 있는 말씀을 선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감탄에서 순종으로
무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놀라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말씀이다.”
“감동적인 설교다.”
“정말 깊은 말씀이다.”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반석 위에 집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들었는가?”
가 아니라,
“이 말씀 위에 네 삶을 세울 것인가?”
입니다.
우리는 매일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한 번의 큰 결정으로만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무엇을 선택하는가,
누구를 용서하는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떻게 살아가는가,
내 뜻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 작은 순종 하나하나가 우리의 집을 세워 갑니다.
폭풍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집이 얼마나 화려했느냐가 아닙니다.
무엇 위에 세워졌느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그 말씀으로 돌아가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삶입니다.
말씀에 감탄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 위에 인생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