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마태복음 10:32–33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하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겠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말씀하신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겠다.
여기서 마음에 남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내 가르침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를 시인하라.”
신앙의 중심에는 어떤 사상이나 원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계신다.
그래서 믿음은 결국 관계를 드러낸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도 나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 있는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울 수 있다.
거절당할까 두려울 수 있다.
오해받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장면을 보여 주신다.
땅에서는 내가 사람들 앞에 서 있지만,
하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 서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도 그를 시인하겠다.”
이 말씀이 참 놀랍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서 나를 인정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마지막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말씀하시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33절에는 엄중한 경고도 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 앞에서 베드로가 떠오른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아니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곡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다시 세우셨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의 실패를 가볍게 여기게 하지도 않지만, 실패한 사람을 절망 속에 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심각하다.
그러나 넘어졌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더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
참된 믿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믿음이기도 하다.
오늘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의 인정을 더 원하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예수님을 숨기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도 내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들의 인정은 변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박수가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 나를 시인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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