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반복하시는 한 문장에 머물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한 번이 아니다.
26절에서,
28절에서,
그리고 31절에서 다시 말씀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예수님이 오해받으셨다면 제자도 오해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비난받으셨다면 제자도 비난받을 수 있다.
심지어 예수님은 몸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말씀하신다.
위험은 실제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첫 번째 이유는 진리가 결국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지만 사람들의 말이 예수님의 정체를 결정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진리를 거짓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진리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판단은 마지막 판단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둠에서 들은 것을 빛 가운데서 말하고, 귓가에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치라고 하신다.
제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들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의 권세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몸을 죽일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위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의 권세는 거기까지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에서 말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예수님은 작은 참새 이야기를 하신다.
참새 두 마리가 작은 동전 하나에 팔린다.
사람의 눈에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이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도 아버지와 무관하게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마음에 남는 것은 참새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다.
참새는 떨어진다.
제자도 고난을 겪는다.
우리의 삶에도 원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참새는 아버지의 섭리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아버지께서 나를 더 세밀하게 알고 계신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순간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다시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믿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믿음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아버지의 손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을 예수님께서 먼저 걸으셨다.
오해받으셨고,
버림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사람의 판결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그래서 오늘의 두려움이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평가도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다.
고난도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말씀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께 들은 것을 말하고,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며,
아버지의 손 안에서 걸어간다.
참새 한 마리도 그 손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하물며 나는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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