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무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그리고 10장이 시작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께서 바로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부르시고, 권세를 주시고,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칠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제자들이 먼저 능력을 갖추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권세를 주셨으며, 그 후에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0:1의 **ἐξουσία(exousia)**는 ‘권세, 권한’을 뜻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권세는 본래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권세 있게 가르치셨고(7:29),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셨으며(9:6), 이제 그분의 사명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권세는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보내시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세입니다.
제자는 자기 힘으로 사역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께 부름받고 예수님께 받은 것으로 섬기며 예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도 정해 주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라.”
제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전파하다’는 헬라어 **κηρύσσω(kēryssō)**는 왕의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처럼 ‘선포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올라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나병 환자가 깨끗하게 되고, 귀신이 쫓겨나는 일들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분리된 단순한 기적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음을 보여 주는 표지였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헬라어는 매우 간결합니다.
δωρεὰν ἐλάβετε, δωρεὰν δότε.
“거저 받았다. 거저 주어라.”
제자들이 가진 것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세도 받았고, 말씀도 받았으며,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은혜를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에서 흘러나오는 응답입니다.
먼저 받았고, 그다음에 줍니다.
복음의 질서는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필요한 것을 많이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
예수님은 이 특별한 파송에서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여행 경비로 마련하지 말고, 여행 가방과 여벌의 옷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이 명령을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여행이나 선교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규칙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누가복음 22:35–36에서는 예수님께서 이전 파송을 회상하시면서 이후에는 전대와 배낭을 준비하도록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 특별한 파송에서 제자들이 보내신 분을 의지하도록 훈련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11절부터는 그 공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보여 줍니다.
어느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면 합당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 집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열린 집과 음식과 환대를 통해서도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의 공급과 사람의 도움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공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평안을 빌라
제자들은 자신들을 받아 주는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을 빌어야 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여기서 평안은 단순히 아무 문제가 없는 편안한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εἰρήνη(eirēnē)**는 구약의 **샬롬(שָׁלוֹם)**이라는 풍성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온전함과 복됨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집에 평안을 빕니다.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거절의 가능성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중심은 제자 개인의 체면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아 예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충실하게 전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충실하게 전해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까지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심판의 날에는”
마지막 15절에서 예수님은 엄중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제자들을 편안하게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와서 그 말씀을 전했지만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 말씀에 대한 더 큰 책임이 따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마태복음 10:1–15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보면 한 가지 흐름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전할 말씀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의 방식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보내심 받은 길에서 필요한 공급도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제자는 자기 힘과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부름받고, 그리스도께 받은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도록 보내심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충실함입니다.
부르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보내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중심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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