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은 우리가 기도에 대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7절만 떼어 읽으면 이 말씀을 쉽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계속 기도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뜻인가?”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보다 훨씬 깊습니다.
본문을 11절까지 읽으면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구하고 있는가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명령을 주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리고 곧이어 약속하십니다.
구하는 자는 받고, 찾는 자는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갑자기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아버지가 떡 대신 돌을 주겠습니까?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아버지가 생선 대신 뱀을 주겠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런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기에 7–11절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있습니다.
아버지.
기도는 어떤 신비한 힘을 움직이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는 자녀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확신은 내가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는가에도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말을 사용했는가에도 있지 않습니다.
기도의 가장 깊은 확신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이시며 그 아버지가 선하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하면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떡이라고 생각하며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돌과 같은 것이 될 것을 아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생선이라고 생각하며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우리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것을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 길을 열어 주세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이 기도에 응답해 주세요.”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 무엇이 제게 정말 좋은지는 아버지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십니다.”
이것이 신뢰입니다.
마태복음 6장부터 예수님은 계속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꽃을 입히시는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아십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아버지가 이미 아시는데 왜 구해야 할까요?
기도는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알려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관계입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나는 내 힘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응답이 늦어질 때도 다시 구할 수 있습니다.
찾을 수 있습니다.
두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하신 아버지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기도했는데도 우리가 기대한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모든 질문에 대한 설명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우리에게 붙들게 합니다.
응답을 이해하지 못해도 아버지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라.
우리는 오늘만 보지만 아버지는 전체를 보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는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다”
라는 확신이 아니라,
“어떤 응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선하신 아버지이시다”
라는 신뢰입니다.
구하십시오.
찾으십시오.
두드리십시오.
그러나 응답보다 먼저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아버지는 아십니다.
아버지는 들으십니다.
아버지는 선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