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재물에 대해 아주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처음 들으면 마치 돈을 모으거나 재산을 가지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말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단순히 우리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십니다.
땅의 보물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도둑이 훔쳐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손에 있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것은 선행을 통해 천국의 점수를 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재물과 삶을 영원한 가치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손길, 복음을 위해 드리는 물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삶은 사라지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는 보통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 반대 방향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계속 투자하는 곳으로 우리의 마음도 따라갑니다.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돈을 어디에 쓰는지,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지를 보면 내가 실제로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물의 문제에서 눈의 문제로 넘어가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건강한 눈은 삶 전체를 밝게 하지만, 나쁜 눈은 삶 전체를 어둡게 합니다.
여기에서 눈은 단순한 시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재물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도 이익으로 평가하게 되고, 관계도 성공의 도구로 보게 되며, 나 자신의 가치도 소유와 성취로 판단하게 됩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결국 삶 전체가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십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재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우리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돈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무서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은 필요를 채우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안전과 가치와 미래를 결정하는 구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결국 돈에 대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가 나의 주인인가?
무엇이 나의 안전을 결정하는가?
무엇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끼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지갑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나 복음은 단순히 “돈을 사랑하지 마라”라고 명령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더 큰 보물이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큰 보물로 발견한 사람에게 돈은 더 이상 주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교만할 이유가 없고, 돈이 부족해도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장 큰 부요함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19–24의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너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너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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