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시면 충분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6:1–4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을 아주 중요한 경고로 시작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 말씀은 선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가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을 당연한 경건의 삶으로 전제하십니다.
문제는 행동보다 동기입니다.
왜 하는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가?
예수님은 구제를 예로 드십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마치 나팔을 부는 사람처럼 자신의 선행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
사람의 칭찬이 그들이 원한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길을 가르치십니다.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 말씀은 모든 선행을 문자 그대로 비밀로 하라는 기술적인 규칙이 아닙니다.
핵심은 자기 선행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한 일을 마음속에 공로처럼 쌓아 두지 말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했다.”
“나는 저 사람을 여러 번 도왔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섬겼다.”
이렇게 자기 의를 쌓기 시작하면 선행조차 자기 영광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사람에게서 아버지께로 돌리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참으로 큰 위로입니다.
사람이 몰라도 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됩니다.
아버지가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선한 일을 하고도 서운해집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몰라주지?”
“왜 아무도 감사하지 않지?”
그 순간 우리는 사람의 반응을 우리의 보상으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그 자리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아버지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박수로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해 선을 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충분합니다.
물론 모든 공개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역의 투명성을 위해 보고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도록 나눌 수도 있습니다.
책임 있는 재정 운영을 위해 공개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공개 여부 자체가 아닙니다.
왜 공개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인가?
예수님은 사람의 시선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사람들이 환호할 때에도 그 환호에 매이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떠날 때에도 진리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는 사람의 박수 대신 조롱을 받으셨지만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였습니다.
참된 경건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입니다.
사람이 보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칭찬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보신다는 사실로 충분한 삶.
하나님 나라의 경건은 사람의 박수를 얻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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