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맹세에 관한 말씀을 통해 단순히 말버릇을 고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말과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묻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말을 더 믿게 만들기 위해 맹세를 붙입니다.
“하나님께 맹세한다.”
“진짜다.”
“내가 정말 약속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묻습니다.
왜 평범한 말은 맹세가 없으면 믿을 수 없는가?
당시 사람들은 맹세의 무게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걸면 더 무거운 맹세이고,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을 두고 한 맹세는 조금 덜 심각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구분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며,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도성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머리카락 한 가닥조차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는 영역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말하든, 모든 말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은 예이면 예, 아니오이면 아니오가 되게 하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말은 단순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말 뒤에 다른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숨기지 않아야 합니다.
말을 믿게 만들기 위해 특별한 맹세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평소의 삶 자체가 신뢰할 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나은 의입니다.
율법주의는 묻습니다.
“어떤 맹세까지는 괜찮은가?”
예수님은 더 깊이 묻습니다.
“네 마음과 네 말은 진실한가?”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 전체에 적용됩니다.
가정에서 하는 말,
교회에서 하는 말,
사업상의 약속,
사역 보고,
사람과의 약속,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말까지도 모두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의 말이 언제나 완전히 진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더 좋게 보이기 위해 과장하기도 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줄이기도 하며,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단지 진실을 말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그분의 말과 삶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실제로 십자가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이 죽고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진실함은 단순히 좋은 인격을 만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수록, 거짓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과장할 필요도 없고,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말이 단순하고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예는 예라고 말하고,
아니오는 아니오라고 말하며,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의 평범한 한마디조차 신뢰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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