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이혼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단순히 법적인 절차만을 다루지 않으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혼증서만 써 주면 되는가?”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법적인 형식만 갖추면 자신의 책임은 끝났다고 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깊이 들어가십니다.
문제는 이혼증서를 제대로 작성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결혼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명기 24장의 이혼증서 규정은 이혼을 장려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이미 존재하던 이혼을 제한하고, 특히 버림받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에서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시선은 이혼의 기술적인 조건보다 창조의 원래 뜻으로 향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맺으셨습니다.
결혼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언약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어떤 이유면 이 관계를 끝낼 수 있는가?”
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이 언약 안에서 어떻게 신실하게 사랑할 것인가?”
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결혼으로 상처받은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편의와 욕망을 위해 배우자를 쉽게 버리는 태도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학대나 실제적인 위험이 있는 상황은 단순히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안전과 보호를 위한 분리, 목회적 돌봄, 법적 보호는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은 결혼 언약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분명하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결국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늘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부를 쉽게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언약적 사랑이 무엇인지 가장 완전하게 보여 줍니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이 사라지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면서 끝까지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바로 그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결혼의 핵심은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 안에서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완전한 모습은 자신의 신부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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