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손보다 더 깊은 곳
본문: 마태복음 5:27–30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외적인 행동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실제 행동이 없었다면 자신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눈보다 더 깊은 곳, 곧 마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문제는 단순히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상대를 욕망의 대상으로 붙들고, 마음속에서 소비하는 시선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지만, 죄는 사람을 소비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외적인 행동보다 먼저 마음의 욕망을 다루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더욱 강합니다.
오른눈이 죄를 짓게 하면 빼 버리고,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면 잘라 버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실제 자해를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강한 과장법을 통해 한 가지를 분명히 하십니다.
죄를 가볍게 다루지 말라.
우리는 죄와 쉽게 협상합니다.
“이번 한 번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음에는 조심하면 돼.”
그러나 예수님은 죄로 들어가는 문을 알고 있다면 그 문을 닫으라고 하십니다.
나를 반복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경계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문제의 콘텐츠를 끊고,
죄로 이끄는 관계에 거리를 두고,
잘못된 습관을 제거하는 실제적인 결단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깊은 문제가 있습니다.
눈을 없앤다고 마음의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손을 자른다고 죄의 뿌리가 제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죄의 가장 깊은 자리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행동 수정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순결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사람을 이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내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지만,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겉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숨겨진 욕망과 마음의 죄까지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리고 동시에,
죄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그리스도께로 가라.
은혜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싸울 힘을 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사람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도록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행동만 조심하라”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시선을 지키고, 마음을 지키고, 죄의 통로를 단호하게 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한 삶을 살아가라고 부르십니다.
참된 정결은 자기 절제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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