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외적인 행동의 문제로만 다루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면 이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깊이 들어가십니다.
마음속의 분노,
상대를 향한 멸시,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살인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마음속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미움이 쌓이고,
분노가 굳어지고,
상대를 더 이상 존중할 가치가 없는 사람처럼 여기기 시작할 때,
이미 마음은 관계를 죽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화를 내지 말라”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화해하라.”
예물을 드리러 갔다가 형제가 나에게 원망할 일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면,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배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사람을 미워하는 모순을 그냥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법정으로 가는 길에서도 가능한 동안 빨리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해를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오래 붙들수록 마음은 더 굳어지고, 관계는 더 깊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살인하지 마라”
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존중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라”
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모두 부족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미워하지 않았습니까?
한 번도 분노를 오래 품지 않았습니까?
한 번도 말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았습니까?
한 번도 화해해야 할 것을 알면서 미루지 않았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의롭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화해를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됨을 제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화해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화해는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해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도 화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하고,
내가 먼저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먼저 나에게 손을 내미셨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밉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분노를 억누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분노를 넘어 화해로 나아가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은 우리를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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