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아주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과 선지자가 가리키던 모든 것을 자신의 삶과 사역 안에서 성취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었고,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와 성전, 희생 제물과 여러 규례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을 잘 지킨 한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의 목적을 완성하시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가장 작은 계명 하나라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입으로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살아 내고, 그다음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여기서 더 깊어집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바리새인보다 더 많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단순한 외적인 종교 행위를 넘어서는 의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보셨습니다.
살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의 미움과 분노도 하나님 앞에 드러납니다.
간음하지 않았다고 해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의 욕망도 하나님께서는 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더 나은 의”는 단순히 행동의 양이 더 많은 의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의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의를 가질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17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성취하러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죄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율법이 요구하던 의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십니다.
그러나 복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며 순종하도록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마태복음 5:17–20의 중심은 “더 열심히 해서 바리새인을 이겨라”가 아닙니다.
중심은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내가 성취하러 왔다.”
예수님께서 먼저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을 외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참된 순종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율법의 완성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의의 삶도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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