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8–33)
요셉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형들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부터
그들은 그를 보고 죽일 계획을 세운다.
“보아라, 꿈꾸는 자가 온다.”
요셉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명할 기회도, 변명할 시간도 없었다.
그의 존재는 더 이상 한 사람의 동생이 아니라
조롱해야 할 상징,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계획은 점점 구체화된다.
죽이고, 구덩이에 던지고,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말한다.
르우벤이 개입한다.
그를 죽이지는 말자고 말하며
요셉을 형제들의 손에서 잠시 건져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피를 흘리지 말자는 선은 지켰지만,
요셉을 광야의 구덩이에 던지는 데에는 동의한다.
요셉은 옷을 벗김당하고
아무 말 없이 구덩이에 던져진다.
그 구덩이는 물도 없고,
도움도, 소리도 없는 마른 구덩이였다.
그 위에서 형들은 앉아 밥을 먹는다.
폭력 이후에도 일상은 유지된다.
양심은 조용해지고,
무감각이 자리를 잡는다.
그때 길르앗에서 온 상인 대상단이 지나간다.
유다는 살인을 이익 계산으로 바꾼다.
죽이는 대신 팔자고 제안한다.
그는 형제이기 때문에 죽이지 말자고 말하지만,
결국 형제이기 때문에 팔아버린다.
요셉은 은 스무 개에 팔려
이집트로 끌려간다.
그 후, 형제들은 요셉의 옷을 가져간다.
그 옷을 아버지에게 내밀며 말한다.
“이 옷을 우리가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의 옷이 맞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도 말하지 않는다.
판단은 아버지에게 넘겨진다.
야곱은 그 옷을 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내 아들의 옷이다.
사나운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구나.
요셉이 틀림없이 갈기갈기 찢겼구나.”
요셉은 살아 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버지의 세계에서 요셉은 이미 죽었다.
이 이야기는 말해 준다.
가장 잔인한 거짓은
직접 말하지 않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침묵은
상대를 가장 비극적인 결론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요셉을 팔았고,
아버지는 스스로 아들을 잃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이 침묵과 오해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다음 장을 준비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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