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8–28)
요셉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형들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부터
그들은 그를 보고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보아라, 꿈꾸는 자가 온다.”
요셉은 아직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명할 기회도, 변명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형들의 눈에는 그는 더 이상 동생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 제거해야 할 상징이었습니다.
계획은 빠르게 구체화됩니다.
죽이고, 구덩이에 던지고,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말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말합니다.
그 순간, 르우벤이 개입합니다.
그를 죽이지는 말자고 말하며
요셉을 형제들의 손에서 잠시 건져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피는 흘리지 말자고 했지만,
요셉을 광야의 구덩이에 던지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요셉은 옷을 벗김당하고
말 한마디 없이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 구덩이에는 물도 없고,
도움도, 소리도 없는 마른 구덩이였습니다.
그 위에서 형들은 앉아 밥을 먹습니다.
폭력 직후에도 일상은 계속됩니다.
양심은 조용해지고,
무감각이 자리를 잡습니다.
그때 길르앗에서 온 상인 대상단이 지나갑니다.
향품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사람들입니다.
유다가 말합니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숨긴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그를 팔자. 그는 우리의 형제가 아니냐.”
살인은 거래로 바뀌고,
동생은 상품이 됩니다.
형제들은 은 스무 개에 요셉을 팔고,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갑니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이렇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문제가 제거되었다고,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보내셨습니다.
은 스무 개는 사람의 평가였지만,
이집트는 하나님의 무대였습니다.
이 구덩이는 끝이 아니라,
섭리가 방향을 트는 지점이었습니다.
사람은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다음 장을 여시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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