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다니엘3:13-18)
세 친구를 회유하고 위협하는 느부갓네살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구원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세 친구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결단을 고백하는 세 친구
18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세 친구의 올바른 적용
느부갓네살은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은 세 사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줌으로 인간적인 애정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절대자인 자기의 명령과 쇠를 녹이는 풀무불의 화염으로부터 누가 그들을 건져낼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현실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인간적인 호의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그들의 절대 신앙은 인간의 나라와 권세는 무너질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뜨인돌의 승리는 확실하다는 것에 대한 믿음 때문었습니다. 다니엘과 함께 중보하던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환상의 핵심을 바르게 깨달았고 자신들이 취해야 할 행동을 바르게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만약 기적을 통해 보다 더 선하신 뜻이 성취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과 난폭한 왕의 손에서 능히 건져낼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그러나 그들의 더운 위대한 고백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아 풀무불에서 타 죽게 된다 할지라도,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 추호도 의심치 않았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 없다는 점을 겸손히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면, 매년 선교지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형당하거나 살해되는 신자의 숫자는 16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죽음은 다니엘의 친구들보다 믿음이 약하거나 의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높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씨뿌림입니다. 그러므로 18절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그저 17절, ‘능히 건져 내시겠고’의 구색 맞추기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우선되는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