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인생은 계속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끌려왔고,
노예가 되었고,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장면에서
단 한 번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요셉을 떠나셨다.”
오히려 감옥 한가운데서
이야기는 조용히 방향을 바꾼다.
꿈은 감옥에서 시작된다
요셉이 갇혀 있던 감옥에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굽는 관원이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들은 각자 의미가 있는 꿈을 꾼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이 꿈은 요셉이 꾸지 않았다.
요셉은 아무 계시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은 요셉을 움직이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밤을 먼저 흔드신다.
요셉은 먼저 ‘얼굴’을 본다
아침이 되자 요셉은
그들의 얼굴이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 너희 얼굴이 왜 이렇게 근심에 차 있느냐?”
요셉은 아직 해석자가 아니다.
먼저 사람을 바라보는 자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큰 일은
능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관심에서 시작된다.
요셉의 신앙 고백
그들이 말한다.
“우리는 꿈을 꾸었지만 해석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때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까?”
요셉은 이 기회를 자기 능력을 드러내는 자리로 만들지 않는다.
자기를 주인공으로 세우지 않는다.
그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해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이 고백은
요셉이 감옥에서도 여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석은 희망이 아니라 ‘시간’으로 주어진다
요셉은 꿈을 이렇게 해석한다.
“세 가지는 사흘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으로 우리 삶에 들어온다.
그리고 요셉의 말대로
사흘 후, 술 맡은 관원은
다시 왕 앞에 서게 된다.
믿음과 인간다움이 만나는 지점
마지막으로 요셉은 부탁한다.
“당신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바로 왕께 말씀해
나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
이 장면은 종종 오해된다.
마치 요셉이 사람을 의지해서 믿음이 약해진 것처럼.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요셉은 이미 분명히 고백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리고 동시에 말한다.
“나를 기억해 달라.”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도
사람을 통로로 쓰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믿음은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이다.
마치며
창세기 40장은
감옥 이야기 같지만
실은 하나님의 배치 이야기다.
요셉은 아직 풀려나지 않았다.
아직 왕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은
사람을 움직이고,
시간을 정하고,
길을 준비하고 계신다.
감옥은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배치가 시작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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