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마소서 (시편 109:1-15)
대적의 무고한 비난
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5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저주의 기도
6 악인은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 쪽에서 서게 하소서 7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로 변하게 하시며 8 그의 연수를 짧게 하시며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 9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10 그의 자녀들은 우리하며 구걸하고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11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12 그에게서 인애를 베풀 자가 없게 하시며 그의 고아에게 은혜를 베풀 자도 없게 하시며 13 그의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여호와는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워 버리지 마시고 15그의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서 있게 하사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5절,
포악한 맹수가 삼키려고 달려드는 것 같이 대적들이 입을 벌려 혐오의 말을 퍼부으며 시인에게 싸움을 걸어옵니다. 시인의 선대를 악함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까닭없이 비방을 일삼는 경박한 자들과 비교할때, 주님의 침묵은 무겁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사면조가의 두려움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함구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침묵, 거짓 평화를 제안하는 위장된 침묵과 다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절망을 만난 자들에게 침묵의 밤이 아침을 기다리는 희망인 것처럼, 주님의 침묵은 울림이 깊은 큰 사랑입니다.
시인은 사랑과 기도로 대적을 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여기에서 강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불의가 반복되고 확장되는 구저에 대한 고발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시인은 이 균형을 알고 있었기에, 사랑의 사람으로서 의로운 분노를 품고 기도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7절,
시인은 대적들이 재판장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정죄하고 죄인을 만들었으니, 이제 그들이 죄인이 될 차례입니다. 시인은 그들이 결백하다고 맹세하는 탄원의 기도도 거짓임이 밝혀져 죄가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 사회도 법치가 정의로운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기도합시다(아모스 5:24).
8-15절,
시인은 하나님께 저주의 기도를 드립니다. 대적들의 생명 단축과 사회적 지위상실, 그 가족의 불행, 부당한 소유의 탈취, 후손의 단절을 구하며, 결국 그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저주이지만, 이 역시 기도입니다. 이러한 저주는 죄의 심각성과 그 결과의 파멸성을 일깨워주고 시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피상적이고 의례적이지 않으며,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여기서 개인적 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의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4,5절) 대의적 공격에도 묵묵히 기도하던 온유한 사람이지만(5절), 사회구조 자체가 불의하여 억울한 사람이 양산되는 상황이 되자 하나님께 공적 정의를 구현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는 온유하고 점잖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진실하지 않은 포장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시인의 거친 감정조차 숨김 없이 가져오길 원하시는 것 같다. 이런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고, 진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매일성경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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