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1:2-3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이 표현은 단순한 감정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하는 구약적 관용구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사랑하다”와 “미워하다”는 현대적인 감정보다 관계적 선호와 언약적 선택을 뜻한다. 즉, 하나님이 야곱을 구속사의 도구로 택하셨고, 에서를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너희를 언약 백성으로 삼은 그 자체가 사랑의 증거”라고 답하시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랑했다”는 관계적 선택,
-“미워했다”는 언약 밖에 있었다는 뜻이지 단순히 하나님이 에서를 혐오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 에돔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는가?
하나님은 에돔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창조하셨고, 심판하시지만 결코 무조건적 혐오의 대상은 아니셨다.
-오바댜 2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라를 통치하실 것”이라 하며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예고한다.
-이사야 19장에서는 애굽과 앗수르까지도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라 예언한다.
그러나 말라기에서는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한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의 특권이 얼마나 크며, 그 언약 안에 있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대비적 표현이다.
즉, 에돔은 회복 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적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거울로 사용된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렇게 사랑하신 이스라엘을 외면하고, 이방의 예배자를 찾으시겠다는가?
말라기 1:11
“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
이 말씀은 단지 이스라엘을 버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본래부터 이방을 포함한 만민을 위한 것이었고, 그 계획은 아브라함의 언약(창12:3) 안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내 이름이 이방 가운데서도 높아질 것”이라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멈추지 않고 확장될 것임을 선포하신다.
이것은 위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과 충성심, 즉 “내가 너희와 함께 영광을 누리고 싶었으나, 너희가 외면한다면 다른 민족이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거룩한 열정의 표현이다.
말라기 1장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마음의 격동- 왜 하나님의 감정이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느껴지는가?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그러나 관계 안에서의 반응은 다양하시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징계하면서도,
-그 자녀가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품으시는 부모의 마음.
그것이 말라기 1장의 하나님의 마음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는 선언부터,
“차라리 문을 닫아라”는 슬픔 외침까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에서 비롯된 아픔의 표현이다.
요약하자면,
질문. 성경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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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나? 언약적 선택을 표현한 관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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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대상이지만, 선택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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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방 예배자를 찾으시겠다고 하나님의 구속은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드러냄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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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이 왜 변화무쌍해 변화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불신과 무시에 대한 관계적
보이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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